◀앵커▶
오늘은 6·25전쟁 7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1950년 당시 낙동강방어선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에, 열일곱의 나이로 참전했던 소년병이 있습니다.
이제 여든 여덟의 노인이 됐는데요,
전사한 동료 소년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50년 가까이 매일 새벽 기도를 올리고 있는 백발의 소년병을, 김서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EFFECT: 다부동 전투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칠곡 다부동전투.
밀려내려오는 북한군을 우리 국군이 저지하면서 마침내 낙동강 전선이 구축됐습니다.
당시 17살, 중학생이었던 박태승 할아버지도 소년병으로 이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71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아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박태승(88)/6.25전쟁 참전 소년병
"(혼자 낙오돼 남하하는 길에) 국군 병사 하나가 부상을 당해서 나무 밑에 신음을 내고 있는데, (나도 17살이었지만) 아무리 잘 봐도 15살밖에 안돼 보였어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같이 가'..."
전쟁으로 인해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도 산산조각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입대한 이틀 뒤, 형이 입대했고 5개월 만에 전사했습니다.
부모님은 평생 죽은 형을 가슴에 묻은 채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습니다.
◀현장음▶목탁 소리, 경전 읊는 소리
소년병의 이름과 군번이 적힌 명부.
할아버지는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에 매일 새벽 소년병 전우들의 넋을 달래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로 47년째입니다.
◀인터뷰▶박태승(88)/6.25전쟁 참전 소년병
"내 마음이 내 자신을 용서를 못해. (내 어머니처럼)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사는 어머니들이 저 세상에서라도 마음이 편하도록..."
할아버지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0대 소년병은 2010년 정부가 국민권익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 실체조차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소년병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법안이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강대식 국회의원/'6·25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법안' 발의
"소년 소녀병들의 희생은 특별한 희생으로 보기 곤란하다, 국가 재정이 많이 투입된다는 명분으로 기재부에서 반대를 하고 있는데..."
국방부가 파악하고 있는 6·25전쟁 참전 소년병 수는 2만 9천여 명.
이중 2천 5백 명 정도가 전쟁 당시 전사했고, 현재까지 생존자는 2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MBC뉴스 김서현입니다.(영상취재 최재훈)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