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11년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만주로 망명한 경북지역 독립투사 상당수는 조국 해방도 보지 못하고 만주에서 순국했습니다.
일부 투사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중국 땅에 묻혀 있거나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영상▶
1990년, 석주 이상룡 선생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됐습니다.
1911년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가산을 모두 청산하고 고향 땅 안동을 떠난 지 79년 만입니다.
또 1932년 중국 길림성에서 순국한 지 58년 만에 귀국입니다.
선생은 '나라를 회복하기 전에는 유골을 고국으로 싣고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인터뷰▶김미영 박사 / 한국국학진흥원
"순국하시고 나서 선생이 사시던 중국 집 뒷산에 임시매장을 했다가 1938년에 하얼빈 한인 공동묘역에 이장을 합니다. 그리고 1987년 독립기념관 건립 당시 선생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자는 계획이 세워지고 1990년이 되어서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
석주 선생의 유해는 처음 대전 국립 묘지에 이장됐다가, 1996년 국립 서울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다시 안장됐습니다.
선생의 처남 백하 김대락 선생도 만주 망명 4년 만인 1914년 12월 순국합니다.
66세의 고령으로 망명길에 올랐던 선생은 신흥학교 건설과 공리회 조직 등으로 만주 동포사회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선생의 묘소는 만주 삼원포 '남산'자락에 마련됐지만, 현재까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락 선생의 묘소에 관해서는 '묘지석 대신 '조선 흰 사기 밥사발'안에 글을 써서 묘소 앞에 묻었다'란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인터뷰▶한준호 박사 /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김대락 선생은 2002년 안동시 임하면에 유해 없는 의관장으로 조성한 묘소만 있습니다. 묘비가 세워졌지만, 중국에서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제 묘소 위치에 대한 고증이 없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향후 이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만주벌의 호랑이' 일송 김동삼 선생은 서대문 형무소서 순국한 후, 유언에 따라 화장한 뒤 한강에 뿌려졌습니다.
일송은 현재 국립 서울현충원에 의관장으로 안장됐지만, 안동 내앞마을에는 생가터만 있을 뿐 선생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주 망명 후 독립투사들은 1940년대까지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이끌어왔지만, 상당수가 만주에서 순국하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호영 기자▶
친일파 후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독립투사 후손들은 3대가 망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대락, 안중근 등 일부 독립투사들은 지금도 묘소와 유해를 찾지 못한 채 중국 땅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영상 임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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