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SERVER!!

안동포항

만주로 간 여성들

이호영 기자 입력 2021-10-06 17:46:27 조회수 10

◀앵커▶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투쟁에는 남성들만이 주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만주로 망명한 남편을 도와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이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틀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의로움을 실천한 시대의 선각자이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했던 망명길과 독립투쟁사를 이호영 기자가 조명합니다.

◀이호영 기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가산을 정리하고 고국을 떠난 것은 1911년 초.

 이상룡 선생의 부인 김우락 여사는 그해 2월 먼저 망명한 남편의 뒤를 따라 가솔을 이끌고 고향 안동을 떠납니다.

 여사의 망명길에는 아들 이준형과 며느리 이중숙, 손자 이병화와 손부 허은 등 일가족은 물론 친인척이 뒤를 따랐습니다.

◀인터뷰▶김주현 차장/경북독립운동기념관
"김우락 선생은 남편 이상룡 선생이 먼저 만주로 떠난 뒤, 당시 5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아들·친척들을 이끌고 함께 만주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이때 쓴 '해도교거사'는 망명 여정과 고향을 떠나는 슬픈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김 여사가 남긴 '해도교거사'는 망명 첫 해 추석을 맞아 중국 정착지에서 쓴 국문가사로, 고향을 떠나는 애뜻한 심정과 고단했던 망명길을 자세히 남겼습니다.

당시 만주 망명 대열에는 석주 가족뿐만 아니라 경북 명문가 여성들도 동참했습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의 부인 박순부와 제수 월성 이씨, 이원일 아내 김경모와 딸 이해동, 권기일의 아내 안동 김씨, 구미 왕산 허위 부인 평산 신씨와 며느리, 상주 강호석 부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울진 평해 황의영과 부인 권송대 선생은망명 결정 단계부터 부부가 함께 상의한 후 망명을 결행하는 등 일부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만주행을 선택했습니다.

경북 여성들은 처음에는 남편을 따라 망명을 택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 투쟁에 투신하고 남자들 못지 않게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칩니다.

◀인터뷰▶강윤정 박사/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해도교거사, 간운사 등 국문가사의 내용을 보면) 김우락 지사와 같은 여성들도 만주 망명을 국권 회복을 위한 대의로 기꺼이 받아들였고, 자신도 역시 시대과제 해결에 한 몫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호영) "망명길을 떠난 경북 여성들은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종부적인 삶을 넘어 조국 독립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의로움을 함께한 실천가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