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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의 골든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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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00분

DJ노트

동지팥죽 단상

 

오늘은 절기상으로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대신에 낮은 가장 짧다고 하는 날이다. 동지엔 또한 이른바 ‘동지팥죽’이라 하여 팥죽을 쑤어먹었다. 팥을 한문으로는 적소두(赤小豆)라고 하는데 고로 팥죽을 한문으로 이어 쓰면 적소두죽(赤小豆粥)이 된다. 동짓날이 되면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께선 팥죽을 쑤어 드시고 이웃에도 나누었다.




근데 이같은 풍습과 까닭은 빨간 팥죽으로 도깨비와 악귀(惡鬼)를 쫓을 수 있다는 어떤 주술적 관념이 지배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당시 같은 동네에 술만 마시면 개망나니가 되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주사(酒邪)가 보통 아니었는데 자신의 어머니에겐 물론이고 동네의 어르신들을 봐도 천방지축으로 대거리를 하기 일쑤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는 언제나 독작(獨酌= 상대가 없이 혼자서 술을 마심)으로 술에 흥건히 젖곤 하였다.




아무튼 그가 술에 취해 동네를 비척이며 나도는 때면 동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흉을 보았다. “귀신은 대체 뭘 하기에 저런 악귀 같은 놈을 안 잡아 가는지 모르겠어!” ‘악귀’는 몹쓸 귀신을 말한다. 또한 악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귀신에는 종류도 많은데 ‘두억시니’는 사납고 못된 장난으로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귀신이다. ‘그슨대’는 캄캄한 밤에 갑자기 나타나 쳐다보면 볼수록 한없이 커지는 귀신을 이른다. ‘손말명’은 혼기(婚期)가 된 처녀가 죽어서 된 귀신이며 ‘몽달귀’는 반대로 총각이 죽어서 된 귀신이다.




사람에게 붙어 몹시 앓게 만드는 귀신은 ‘저퀴’이며 ‘태주’는 마마를 앓다가 죽은 계집아이의 귀신을 의미한다. 한데 지금껏 나열한 것처럼 귀신에게도 부정적인 귀신만 있는 건 아니다. ‘조왕’은 부엌을 맡은 귀신이며 ‘주당’은 뒷간을 지키는 귀신이니 말이다. 또한 집터를 지키는 귀신은 ‘터주’이고([터줏대감]이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성주’는 집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귀신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동지가 되면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 먹는데 보통 찹쌀가루나 수수 가루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새알만 한 덩이로 넣은 것이 바로 새알심이다. 이렇게 만든 동지팥죽은 이미 담가둔 시원한 동치미와 먹어야 제 맛임은 구태여 잔소리다. 예전엔 오늘과 같은 동짓날이 되면 동지팥죽을 쑤어 먹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같은 고운 풍습과 여유, 그리고 낭만까지를 잊은 듯 하여 작금의 냉갈령스런 세파(世波)가 자못 감프다는 느낌 지울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