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트
유치원 첫사랑(일요일에 방송 되는 인생극장 신청이요)
그녀의 이름은 <이은주>. 1970년대에 유치원을 다녔다면 다들 아시다시피 집안이 넉넉해야 했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교육열이 높아야 했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았던 저는 당당히 유치원에 입학했고 입학과 동시에 귀여운 여자애를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활발했던 저는 당장 그애에게 프로포즈를 했죠
<은주야! 오늘부터 우리 짝궁하자?>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수줍어 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며 예스 사인을 보냈다.
그로부터 우리는 매일 등교길에서부터 손잡고 유치원에 갔고 그녀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용 시간에는 당연히 내 파트너가 되었고
음악 시간에는 함께 합창을 했고 하교길에도 부부처럼 집에 가곤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2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부부처럼 함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갔습니다. 문제는 유치원 졸업식 5개월 앞두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사랑스런 은주가 저 아닌 전학 온 다른 남자 아이랑 놀아 나는 것이 아닙니까!
<은주야! 왜 나랑 안 놀고 왜 재랑 놀아?> 이렇게 말해도 은주는 < 어쩔 수 없어!>이라고 말하곤 나만 보면 거의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아닙니까!
속 타는 하루하루 지나고 저는 결단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은주네 집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납치를 해서 오늘 하루는 끝까지 붙어 있기로...
근데 은주네 집앞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 했습니다. 은주가 전학온 그 남자애랑 같은 집에서 같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전 정신이 혼미해지고 질투심에 불타 그 남자 아이를 놀이터로 끌고가 주먹으로 막 패기 시작했습니다.<너 다신 은주랑 놀지마!> 그 때 쫓아온 은주는 <때리지마!>하면서 울면서 말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말을 들은 저는 질투심이 극에 달해 그 남자애를 더욱더 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들려 오는 은주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만 때려! 그만 때려! 울 사촌 오빠 죽겠다!>
그말을 들은 저는 기운이 확 빠지면서 넘 챙피해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은주 보기 챙피해서 유치원도 안 가고 집에서 식음전폐로 지냈습니다.
유치원 졸업식이 크리스마스와 함께 다가 왔습니다. 유치원을 거의 중퇴한 저는 성탄절을 기점으로 은주에게 사과의 성탄카드를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글을 잘 몰랐기에 어머니에게 부탁해 문구를 부탁했고 나는 개발새발 한글을 그리다시피
성탄 카드를 적어 냈습니다.
<은주야 미안해. 우리 국민학교 들어가면 다시 만나자> 그러나 한글을 몰랐던 저는 글씨가 틀려 버렸고 난감해 지려는 순간 어머니 화장대에 예쁜 카드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카드를 가져다 다시 사과의 문구를 써내려 갔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기뿐 마음으로 집에 돌아 오니 어머니께서 <유신아 여기 있던 카드 못 봤니?>
그래서 나는 <내가 은주에게 카드 보냈어요!> 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어이 없다는 듯이<그 카드 은주에게 온 거야! 바부야>
전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래서 유치원 졸업식도 챙피해서 못 가고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로부터 여자애만 보면 말도 못걸고 얼굴만 붉히는 내성적인 아이로 변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유치원을 은주와 무난히 졸업했다면 저는 아마도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너무 빨리 왔던 첫사랑이 넘 드라마틱하게 깨지면서 20대 후반까지 여자에게 말도 못 거는 쑥맥인 남자로 살아 왔으니까요.
이제는 어느정도 극복하고 결혼도 하고 주변 아주머니하고도 대화 잘 나누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