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트
수무푼전 유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교수신문에선 올해의 화두를 관통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이같은 수순에 의거, 교수신문이 발표한 건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러니까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라는 뜻으로써 자기(自己)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실로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는 비유라 하겠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올해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수무푼전((手無-錢)’을 꼽았다네요.
이는 ‘수중에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음’을 나타내는, 자본주의 국가에선 기실 초라한 행색을 드러내는 어떤 수치(羞恥)에도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인용한 ‘엄이도종’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지만 더욱 감회가 남다른 것은 역시나 ‘수무푼전’이더군요.
이는 제가 지난 10월에 직장을 그만 둔 뒤 여태껏 백수건달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때문입니다. 취업을 하고자 이력서를 내놓았으나 지금껏 함흥차사이기에 이같은 정서는 더 무거운 공감의 당위성을 지닙니다.
그 바람에 돈이 들어가는 송년회는 두 건이나 일부러 작파(斫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송년회 불참 통보에 “분위기 메이커인 네가 안 오면 어떡하니?” 라는 친구들의 아우성이 이어졌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몸이 안 좋아서 그만......”이라며 발을 빼는 모양새만 취했지요. 하여간 상황이 이처럼 수무푼전이고 보니 주말과 휴일이 되어도 딱히 갈 데가 없다는 원초적 난관에 봉착하기에도 이르렀습니다.
왜냐면 극장에 간다 해도 돈이 들어가고, 하다못해 보문산에 오른다손 쳐도 하산 길엔 보리밥이라도 한 그릇 사 먹어야 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취업이 될 때까지는 두 눈 질끈 감고 휴일엔 무조건 돈이 안 들어가는 도서관만 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거기 가서 하루 종일 책을 본다고 해도 돈을 내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으니까 말이죠. ‘수무푼전’ 얘기가 나온 김에 부언하자면 무물불성(無物不成)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는 ‘물질이나 돈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 반증이나 방증은 구태여 거론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요?
어쨌거나 이제 올해도 열흘 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되돌아보건대 올해는 경제적으로 흡사 미아(迷兒)가 된 한 해이기도 했지요.
그 바람에 서울서 공부하는 딸에게도 생활비를 제 때 보내주지 못 한 아픔과 미안함이 여전히 교차합니다. 그래서 도래하는 2012년엔 정규직으로 취업이 되어 안정된 물외한인(物外閑人)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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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3일은 아내의 53회 생일입니다.
건강이 여전히 안 좋은 아내가 새해엔 다시 원기 왕성한 건강을 되찾길 바랍니다.
더불어 제가 어서 취업이 되어 힘든 알바 일을 그만 두게 했음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