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에게
선녀와 나무꾼
아주 옛날, 어떤 마을에 나무꾼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날도 나무꾼이 나무를 베고 있었는데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 달려왔다. 그리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무꾼은 쌓아 놓은 나뭇더미 속에 사슴을 숨겨서 사냥꾼으로부터 구해 주었다. 무사히 살아난 사슴은 나무꾼에게 ‘보너스’를 선물했다. 산을 돌아 나가면 하늘의 선녀들이 멱을 감는 연못이 있다고 귀띔해 준 것이다.
선녀들이 멱 감는 틈을 타서 그중 한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라고 했다. 나무꾼은 연못을 찾아가서 사슴이 일러준 대로 했다. 멱을 다 감은 선녀들이 다들 하늘로 돌아가는데 날개옷을 도둑맞은 막내 선녀는 그러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나무꾼은 막내 선녀를 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아내로 삼았다. 더 이상은 설명치 않아도 모두가 아는 설화(說話)일 것이다. 난데없이 선녀와 나무꾼 얘기를 꺼낸 건 다 까닭이 존재한다. 필자는 나흘 전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랑하는 딸이 외손녀를 순산한 것이다. 덕분에 아내까지 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필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살이를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다. 가난해서 중학교조차 진학치 못하고 소년가장으로 온갖 시난고난의 암흑기를 전전했다.
이래 가지고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지금의 아내가 첫사랑으로 필자 마음속에 화살처럼 들어와 요지부동(搖之不動)으로 박혔다. 그야말로 현대판 ‘선녀와 나무꾼’이었다.
세월은 여류하여 두 아이가 모두 결혼했다. 딸과 사위가 서울대 출신이다. 며느리 오빠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기업의 과장인 아들은 올부터 회사 추천으로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추측컨대 장차 회사의 중추적 임원(任員)으로 양성코자 하는 포석이지 싶다.
얼마 전 집에 온 아들과 며느리는 아내에게 명품백을 선물했다. 차(車)가 남자의 로망이라면 명품백은 여자로 하여금 때론 열반(涅槃)에 들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 말에 걸맞게(!) 아내는 요즘 외출할 때마다 명품백을 들고 다니며 아들과 며느리 자랑에 입에서 침이 마구 튀는 것도 모를 지경이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래서 불행이 있으면 반드시 행복도 있는 법이다. 가방끈이 짧았기에 수십 년 동안 독서와 독학으로 무지의 벽을 깨뜨렸다. 다음 달이면 필자의 두 번째 저서가 출간된다.
이 또한 나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덕분이다. 나무꾼은 이제 더 이상 선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나무꾼은 기자에 이어 작가까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