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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오후2시

즐거운 오후2시

즐거운 오후2시

14시 05분

제작진에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을 견디는 것이 위대함입니다.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을 견디는 것이 위대함입니다.

새벽 여섯시. 신랑은 알람이 없어도 제 시간에 일어납니다.
전 날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피곤할 텐데도 여지없이 이 시간이면,
신랑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사우나로 향합니다.
한 번은 신랑에게 수영이나 헬스를 아침 운동으로 권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우나가 체질에 맞는다며 아침 사우나는 거의 거르는 일이 없지요.
신랑은 배달된 우유와 신문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갑니다.
저는 현관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일어납니다.
어제 밤에 정리 못한 거실을 대충 치우고 신문을 읽습니다.
가끔 제가 늦잠을 자거나 신랑이 일찍 출근할 때는 저의 신문읽는 시간도 생략됩니다.

신랑이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면 저는 식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냉장고에서 불려놓은 쌀을 꺼내어 전기밥솥에 붓고 취사버튼을 누릅니다.
어제 저녁식사에 먹다 남은 찌개나 국을 렌지에 다시 데웁니다.
그리고 김치, 멸치, 김을 내놓으면 아침 식사 준비는 끝.
식탁을 차리며 아들 딸 이름을 부릅니다.
당연히 한번 불러 벌떡 일어나지는 않지요.
큰 애는 아빠가 두 세번 이름을 부르면 아들은 머리를 긁적이고 목욕탕으로 갑니다.
둘째딸은 아무래도 제 손이 가야 합니다.
그날 입을 옷과 양말을 챙겨 자고 있는 아이의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다리를 들었다 내리며 옷을 갈아입힙니다. 그제야 살짝 눈을 뜨고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자는 딸을 아침에 깨우기 안쓰럽지요.
저는 딸의 얼굴을 사정없니 부비부비 하고는 어부바를 시켜 일단 식탁에 앉힙니다.
덜 깬 아이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어주면 그제서 눈을 뜨고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신랑이 먼저 출근합니다.
아이들은 식탁에서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아침식사는 계속 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면 시간전쟁을 합니다.
“10분 남았네, 빨리 먹어. 이제 두 숟가락 남았어. 국도 좀 먹고. 김치는 안 먹어?”
이제 5분 남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목소리도 커지고, 거듭 재촉합니다.
한 손에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이고, 다른 한 손에는 빗을 들고 머리를 빗어줍니다.
학교 가기 1분 전. 칫솔질을 끝내고 가방을 메면 등교 준비 끝.
아이들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힙니다.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며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 라디오를 켭니다.
남은 반찬과 밥을 입에 넣으며 식탁을 치웁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각 방을 돌며 침대를 정리하고 빨래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습니다.
이불정리와 벗어놓은 옷만이라도 정리해주면 제 할 일이 한결 쉬워질텐데.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옷과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지’ 푸념과 동시에 제 손은 자동으로 정리모드에 들어갑니다.
세탁기를 돌리고 목욕탕과 베란다를 치우고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나면 아침 시간 끝.

열시부터 한시. 이 시간이 바로 저의 독립시간이지요.
갑천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와 샤워를 합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취미활동도 하러 나갑니다. 목요일은 아이들 엄마와 정기 모임을 하고요.
간간히 친구나 동네 언니들과 브런치도 합니다.
참 지난 주에는 동네 엄마와 물김치를 담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반찬만드는 모임을 해보자는데 ㅎㅎ.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이라고 절대 여유롭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한시 반.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딸이 집에 옵니다.
날씨가 좋으면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한 시간은 놀다가
아이들이 학원가는 차를 타고 사라지면 그제서 집에 돌아옵니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학교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요.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하다보면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 아들이 들어옵니다.
냉장고를 열고 취향 껏 골라 먹지요.
그럼 아이들 숙제를 봐주거나 옆에서 제 일을 합니다.
방문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는 아이들이 교대로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저는 음료수를 준비하지요.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어갑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온라인수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심하다면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르기도 합니다.
그 사이 저는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아파트 장이 서는 날은 그곳에서 장을 보고,
저녁도 그곳에서 파는 분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아빠가 늦게 오시는 날에는 국이나 찌개없이 일품요리를 하지요.
볶음밥, 덮밥, 치킨, 카레...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씻으면 아홉시.
거실에서 이런 저런 얘기 좀 하다보면 10시가 좀 넘어요.
굿나잇~ 스위치를 끄고 잠이 듭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죠?
하루하루 별거 아닌데 참 바빠요.
일 년 전, 일을 그만 두고 가정주부로 돌아왔을 때 이런 하루가 사실 좀 낯설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날들이 바쁘긴 한데 지루하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나가서 일하면 얼마를 버는데, 이렇게 지내는 거 시간 낭비 아니야?
그렇게 지낸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알게 되었지요.
어제, 오늘, 내일...
별 볼 일 없는 일상 같았는데, 지루한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보니 아이들이 예전보다 한 결 밝아졌다는 것을.
신랑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예전보다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을.

집에 있으니까 시간이 남아 아이들에게 거창한 간식을 해준다거나 뭔가 특별한 일을 준비하지는 않아요.
여전히 빵집에서 구입한 빵과 우유로 간식을 주고,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다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아이들 귀가 시간보다 늦게 들어오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지루한 반복 같지만
그것이 가족들에게는 위대한 일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좀더 가정주부답게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 보려구요.
어제 아파트 관리비가 나왔어요. 지난 달보다 1만원 정도는 아껴 썼더라구요.
아이들 배란다에 우유곽을 쌓아 바닥에 깔아주었더니 바닥이 푹신하다고 좋아하네요.

위대함은 단조로움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요?
그 단조로움 - 평범함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저에게 주어진 행복인 것 같습니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성실하게 지내는 자가 성공을 이룬다.
특별한 것 근사한 것 하지 않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무던히 견디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행복이며 위대한 작업같다는 생각이 든 날입니다.


신청곡 - 포지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