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에게
신발끈이 풀렸다면 잠시 쉬어가세요.
신발끈이 풀렸다면 잠시 쉬어가세요.
지난 주말 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주고.
그래서 바람쐴겸 운동도 할겸 둘째를 데리고 자전거 라이딩했네요.
여기저기 핀 꽃들과 함께 갑천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기분, 아시나요?
저는 아이 뒤를 따르다가 핸드폰을 꺼내 아이의 뒷모습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따라 자전거 패달을 밟았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꽃들이 많이 피어난 곳에서 아이의 모습을 다시 찍어줍니다.
아이가 눈치 챘는지 뒤를 돌아보고는 자전거를 세워 포즈도 취해 주었습니다.
새초롬한 표정으로 꽃들을 가리키는 둘째. 누굴 닮아서 ㅎㅎ.
그러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또 신발 끈이 풀어져 있었습니다.
외출할 때 자주 운동화를 신는 편인데 며칠 전부터 운동화 끈이 자꾸 풀립니다.
길을 가다가 몸을 숙이고 끈을 묶어놓으면 또 풀립니다.
어쩌다가 아래를 쳐다보면 또 풀려있구요.
오늘도 여지없이 운동화 끈이 풀려있네요.
다시 끈을 묶고 일어서려는데 아이가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엄마 이 꽃이 뭐야?”
“응, 분홍꽃이네!”
“이건?”
“노랑꽃!”
“그럼, 이 하얀꽃은?”
“응, 토끼풀인가? 가자. 우리 저기까지 빨리 갔다가 맛있는 점심 먹으러 가자.”
“엄마, 내가 무슨 꽃이냐고 물어봤잖아.”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엄마는 또 그런다. 빨리빨리. 맨날 빨리빨리...”
제가 또 그랬네요.
모든 일에 시간을 확인하며 일을 끝내던 습관이 아이를 대할 때도 그대로...
몸이 기억해~ 라는 개그프로그램의 지난 유행어처럼
저는 ‘빨리빨리’ ‘어서 해’가 몸에 베어있나 봅니요.
밥을 먹을 때도 가족끼리 이야기하며 여유있게 먹기보다는
학교가려면 늦어, 어서 먹어. 엄마도 빨리 치우고 나갈꺼야, 합니다.
미술관에 가서도 한 작품을 느긋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둘러볼 것이 많다 생각해서 5분 대기조마냥 겉핥기식으로 훑어보는 식입니다.
역시 오늘도...
제 딴에는 여유있게 아이와 자전거타러 나가자 해놓고는,
목적지를 정해 빨리 다녀 와야하는 꼴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니 가는 목적지만 보이고 가는 길에 핀 꽃이며 햇살이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죠.
신발 끈이 풀려도 갈 길이 바빠 대충 매다보니 곧 풀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신발 끈이 자꾸 풀린다며, 혹은 어떤 실수나 행동이 자꾸 반복된다면,
그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목적없이 이러저리 날뛰는 거랑 같아요.
잠시 쉬어가세요.
잠시 쉬어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주변도 살피세요.
그리고 신발 끈을 단단히 메세요.
쉽게 풀리지 않도록.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호흡한번 내쉬라고 신발 끈이 풀린 거예요.
신청곡 : 김윤아 “길” (시그널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