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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오후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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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05분

제작진에게

징기스칸 어록과 나의 함수관계

-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그 유명한 <징기스칸 어록>이다. 어록(語錄)은 위인들이 한 말을 간추려 모은 기록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할 때 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야근이다.

그래서 오전 10시가 다 되도록 일부러 이부자리 안에서 뭉기적거리며 농땡이를 부렸다. 이래야 이따 야근이 덜 피곤한 때문이다. 이럴 즈음 전화가 울었다. 내가 독자모니터로 활동 중인 모 언론사의 기자님이었다.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로?” 급히 독자투고 형식의 글이 필요하니 송고를 부탁한다는 요지였다. “네, 알겠습니다! 30분 안에 글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급히 이불을 걷어찼다. 그리곤 거실로 나와 PC를 켰다.

200자 원고지 4매 분량이랬지? 그렇다면 10분이면 족했다. 나는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글을 써 이메일로 송고했다. 그 시간이 딱 9분 걸렸다. 그리곤 기자님께 문자 메시지를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원고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벌써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의 글쓰기 경력은 올해로 20년이다. 이런 내공 덕분에 지난 12월 초엔 생애 최초의 저서도 출간했다.

고작 초졸 학력의 경비원이 책을 냈다고 해서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지금까지 한 인터뷰(방송 & 신문)만 다섯 번이 넘고 각 언론사의 러브콜이 계속되고 있다. <징기스칸 어록>과 비슷하게 나는 집안이 나쁘다고 해서 탓하지 않았다.

또한 불과 나의 첫 돌 즈음에 어머니가 가출하였다. 아버지는 만날 술에 취하시어 가장이기를 아예 포기하셨다. 가난이 지독하여 초등학교의 졸업식마저도 갈 수 없었다. 그 시간에 나는 역전에서 구두를 닦아서 돈을 벌어야 한 때문이었다.

환경이 그처럼 최악이었음에도 나는 아버지를 버리지 않았다. 비록 자정이 넘은 시간 아버지의 그 지겨운 술 심부름이 싫어서 남의 집 마루 밑이나 밭에 들어가 풍찬노숙을 했음에도 이튿날 아침이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가여운 아버지 드시라고 밥을 짓고 국도 끓여 바쳤다. 배운 게 없다고, 또한 힘이 없다고도 탓하지 않았다. 나는 영어를 한 줄도 몰랐으나, 스스로 독학하여 깨우쳤다.

그리곤 영어로 밥을 먹는 회사에서 약관 26살에 전국 최연소 소장까지 해봤다. 징기스칸의 주장처럼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20년 동안 200자 원고지 6만 매 분량 이상의 글을 써왔다.

따라서 다른 건 몰라도 글을 쓰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올해도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이 즈음엔 누구나 한 해를 결산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올해가 가장 소득이 ‘짭짤한’ 한 해였다.

국가기관의 언론기자와 메이저 언론사의 독자위원(모니터) 선발에 더하여 책의 발간, 그리고 또 다른 언론사의 대전.충청지역 취재본부장 발탁이 바로 그것이다. 한데 이러한 결과의 도출은 모두가 내 별명 홍키호테처럼 평소 ‘모험을 두려워 말라!’는 마인드와 행동이 어우러진 합작품이자 결과물이란 생각이다.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려라.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명실상부한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