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에게
자신만만 이유
10년 전 공짜 중국문화기행은 오로지 공모전이 가져다준 수확의 덕분이었다. 지금도 매년 실시 중인 근로복지공단 주최의 근로자문화예술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당시 나는 수필부문 응모에서 금상을 받았다.
별도의 두둑한 상금 외에도 공짜로 중국까지 여행할 수 있었으니 그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었으랴! 공모전(公募展)은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다. 공모전은 이를 주최하는 기관이 제각각인데 우선 중앙정부와 기관이 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재단과 협회에서도 실시한다. 신문과 방송 등의 언론은 물론이고 공기업과 대기업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중소와 벤처기업 외 학회와 기타의 비영리 단체들도 있다.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장르는 기획과 아이디어, 디자인과 광고(마케팅)가 있다. 이어 문학과 시나리오, 영상과 UCC, 슬로건과 네이밍 또한 무시로 실시한다.
논문과 리포트, 캐릭터와 만화, 게임도 눈여겨볼 만 하다. 음악과 미술, 무용과 건축(인테리어), 과학과 공학 분야는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공모전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모전은 많은 액수의 상금이 우선 호기심을 자극한다.
로또복권은 매주 사봤자 ‘꽝’이지만 공모전은 다르다. 장원이나 1등을 하면 더 좋겠지만 등수에만 들어도 상금이나 상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공모전의 내용을 이메일로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다. 그럼 그곳을 클릭하여 내게 맞는 옷을 고르듯 내용을 찬찬히 살핀다. 그중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단연 문학 쪽이다.
상금에 탐이 나 사진공모전에 몇 번 보내봤는데 딱 한 번 당선되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꼴등으로 겨우 턱걸이를 하여. 이후 사진 분야 역시 나의 깜냥으론 역부족이라 판단하곤 손을 뗐다. 반면 문학관련 공모전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공모전에서 당선이 되려면 심사숙고가 기본이다.
이어 자신이 응모코자 하는 걸 가상의 집(家)으로 지어야 한다. 먼저 집이 지탱할 수 있게끔 땅을 판다. 대략의 지평(地坪)은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200자 원고지 기준 몇 매인가를 평수(坪數)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으론 기둥을 세우는 일인데 글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가는 게 좋다.
끝으로 지붕을 세우는 것인데 지붕 공사가 허술하면 비가 샌다. 따라서 정성을 기울여 튼튼하여 올려야 한다. 이렇게 ‘글 공사’가 끝나면 처음부터 세심하게 제 3자의 입장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 바둑(아마추어)을 둘이서 두면서 몰입하다 보면 정작 허수(虛數)를 발견치 못 한다.
그러나 곁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는 허수를 발견하곤 헛기침을 하면서까지 묘수(妙手)를 넌지시 일러준다. 그래서 바둑판이 엎어지고 드잡이까지 벌어지는 걸 수도 없이 봤다. 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썼다고 자화자찬해봤자 막상 심사위원의 눈에 들지 못 하면 소용없다. 따라서 독자 혹은 심사위원이란 입장에서 자신이 쓴 글을 냉철하고 명확하게 천착하는 지혜의 눈을 길러야 한다.
정치인은 이념의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대중(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옳다. 그래야 재선(현역 국회의원의 경우)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공모전에 보내는 글(그림과 기타 또한)도 마찬가지다. 공모전을 담당하는 이와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라디오와 TV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시 ‘고작’ 문자메시지 당첨만으로도 상품을 준다. 예전엔 정성을 들여 사연(글)을 써서 해당 매체에 올린 뒤 담당 작가와 PD에게 낙점이 돼야만 비로소 상품을 수령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또한 어찌 보면 당돌한 세월의 흐름 역류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오늘날 늙고 병까지 드신 어르신을 노인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흉이 아니듯 그렇게. 오늘도 나는 모 공모전에 보낼 글을 별도로 쓰고 있다. 당선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필패하기 때문이다. 장수가 전장에 나갈 때 두려움을 느끼면 반드시 진다. ‘시작이 반’이란 말은 거저 생긴 게 아니다. 저비용 고효율에 글쓰기만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