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SERVER!!
즐거운 오후2시

즐거운 오후2시

즐거운 오후2시

14시 05분

제작진에게

합창은 자기를 낮추어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합창은 자기를 낮추어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매주 수요일 열시부터 열 두시.
저는 어느 한 소모임 합창단에서 소프라노 단원입니다.
어릴 때 노래를 좋아했다는 거. 그리고 나이 들어 취미생활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던 거.
이 두 개의 공통점만으로 합창부 단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합창 연습이 이제 일년 쯤 되어가네요.
물론 아직은 이렇다 할 만한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큰 실수없이 단원들에게 큰 피해 주지 않고 소프라노의 한 멤버로 즐겁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몇 달 전에는 다른 멤버들 소리에 살짝 묻혀서 합창제 발표도 한 번 가졌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과 직장생활을 하는 틈틈이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습니다.
아이를 데려다주러 간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배우기 위해서였지요.
타인의 연주된 음악을 귀로 듣는 즐거움에서 내가 직접 연주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일명 적극적인 유희라고 해야 하나요?
그러나 악기를 다룬다는 즐거움도 잠시 처음 열심히 배워 멋지게 연주하자던 의지는
어디 가고 집중력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악보 보랴, 건반 두드리랴 즐기려 시작했던 피아노가 점점 두려움과 자신 없음으로 변했습니다.
간신히 악보 읽는 법만 익히고 조용히 학원을 나왔죠.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합창이었어요. 악보를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피아노 반주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고 음표의 변화 정도는 읽는 수준이라 생각했죠.
그 정도면 다른 단원들에게 큰 피해 없겠다싶어서 겁 없이 합창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한번 해보자 싶었습니다.

처음 합창단에 들어가서 연습한 지 두 주쯤 지났을까요?
옆에 분이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어요.
“합창은 자신을 낮추는 거예요.
여기 노래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목소리만 내려면 합창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 목소리를 낮추어야 해요.
선하씨는 젊어서 그런가 목소리에 힘이 있고 소리도 맑아요.
그런데 목소리가 좀 튀어요.”

나는 우렁찬 목소리 하나를 무기로 이 합창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내 소리를 낮추라니.
그럼 내가 할 게 없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었지요.
어찌 들으면 음도 못 맞추면서 목소리만 내지른다 싶은 생각에 창피스럽기도 했습니다.
좋은 충고에 감사하다며 미소로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제 스스로가 살짝 의기소침해서 다음 곡은 아예 립싱크를 해버렸어요.

그러다가 지휘자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지휘자는 두 손을 화려하게 역동적으로 내두르지 않습니다.
꼭 느리고 고요한 노래가 아니더라도,
힘 있고 활기찬 노래를 지휘할 때도
지휘자는 통제된 손길로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내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단원들의 얼굴 표정도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목소리를 낮추라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단원들 모두 악보와 지휘자의 손을 번갈아보면서 다른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내 악보와 내 박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파트의 옆 사람 소리와 다른 파트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도 그랬어요.
노래를 힘 있게 부르되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리를 낮추어 화음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 잘하는, 가창력 있는 가수를 보면 무대에서 쓰러질 듯 열창하죠.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터질 듯한 소리에 함께 동요되어 슬퍼하고 환호하고
그러면서 저 가수 노래 참 잘해, 생각했죠.
그러나 무대 위에 혼자 서 있는 독창과 합창은 분명 다른 것이었습니다.
힘은 있으나 남발하지 않고, 슬프고 즐거우나 과하지 않는 것.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절제된 화음이 듣는 이의 감동을 주는 것.
이것이 제가 몰랐던 합창이었습니다.

내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
그것은 표정과 소리로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 하나는 작지만 여럿이 모여 커지고, 그것이 서로 다른 화음으로 조화를 이루어낸다는 합창.
이 멋진 합창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참 대단스럽네요.
내일은 수요일입니다.
나를 낮추고 다른 이의 소리를 듣는 연습하러 내일도 합창하러 갑니다.

곽진언 “함께”